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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경남 진주시 남성동
홈페이지 : http://tour.jinju.go.kr
문 의 처 : 진주성 관리사무소 055-749-2480
지정번호 : 사적 제118호
개 요 :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김시민 장군의 농민항쟁 이나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1862년 전국적인 임술민란의 대표격인 진주민란 등 큰 사 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임진왜란과 관계가 깊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 는 약 5m~8m(15척)이며, 성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 (1347-1416)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 (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남쪽)이 있고, 성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 강 (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 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 (1592) 임진왜 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 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 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2만여명을 맞 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 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 대, 북장대, 창열사,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도로안내 : 1)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이용시 서진주 IC -> 2km -> 신안광장 -> 진주성 2) 3번 국도 이용시 진주시내 입구(북부파출소) -> 직진-> 서장대신호대(좌회전) -> 진주성 3) 남해고속도로 이용시 * 여수, 순천 -> 진주 -> 서진주 IC -> 2km -> 신안광장 -> 진주성 * 부산, 마산 -> 진주 -> 동진주 IC -> 남강교 -> 진양교 -> 문화거리 -> 계속 직진 -> 천수교(우회전) -> 진주성 입구
현지교통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10분 거리
주변명소 : 향토 민속관, 인사동 골동품거리, 남가람 문화거리, 경남문화 예술회관, 진양호 전망대, 전통예술회관, 물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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