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heon Complex Fish Market

싱싱함이 가득한 인천종합어시장 이제 우리 곁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HOME > 관광문화센터 > 네티즌추천여행지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945 덕수궁 jjang80621 2006-09-14 14078

위 치 : 서울 중구 정동 5-1
홈페이지 : www.deoksugung.go.kr

연 락 처 : 덕수궁 관리사무소 ☎02-771-9952

개 요 : 사적 제124호의 덕수궁은 본디 왕궁이 아니었다.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갔다가 한양으로 환도한 뒤 덕수궁에서 머무른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고쳐부르고 7년동안 왕
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
만을 유폐시켰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의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
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
긴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
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요즘와서는 경운궁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
기되고 있다.

덕수궁에서 지난 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하다. 덕수궁
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
내다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덕수궁의 편전인 덕홍전은 정면이 3칸 측면이 4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구조로 출입문
역시 서구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60-1970년대에는 국화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개장시간 : 3 ~ 10월 : 09:00 - 17:00 (토, 공휴일은 18:00까지)
11 ~ 2월 : 09:00 - 16:30
※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
입장은 매표 종료시간까지, 관람은 매표종료후 1시간까지

입 장 료 :
어 른(19 ~ 64세) 1000원 800원(30인 이상)
청소년( 7 ~ 18세) 500원 400원(10인 이상)

* 6세 이하, 65세 이상 무료
덕수궁에서 지난 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하다. 덕수궁
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
내다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이 건물은 1904년 세운 서양식 건물로서, 고종 황제가 다과를 들며 음악을 감상하던
곳이다. 이후, 한 때 태조, 고종, 순종 임금 영정과 어진을 모시기도 했다>

주요시설물 : * 대한문 : 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이다. 이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이고, 궁궐의 동문이었다. 대안문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판 글씨는 당시 한성부 판윤을 지냈던 남정철
이 썼다.

* 광명문 : 이 문은 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광무 8년(1904)에 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
하면서 정동에 있던 홍천사의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를 지
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다.





* 석조전 : 대한제국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광무 4년(1900)에 착공하
여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석조 건물로,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
은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

     
ㆍ
ㆍ
ㆍ
ㆍ
ㆍ
ㆍ
   
창덕궁과 후원 2006-09-14
서울성곽 (서울 중구) 2006-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