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요 : 나주의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안내판 중 하나가 '천년 목사 고을 나주' 라는 것이다. 나주는 고려 성종 때부터 조선 말기까지 2군 8현을 거느린 커다란 고을이었다. 나주가 큰 고을이 된 것은 고려 왕건이 나라를 세울 때 이곳 사람들의 덕을 보기도 했거니와 영산강 덕도 간과할 수 없다. 영산강이 나주평야를 풍요롭게 적셔준데다가 목포에서부터 뱃길이 이곳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주시 남내, 성북, 금남, 향교동 일대 돌로 쌓은 성이 나주읍성인데 나주읍성은 동·서· 남·북 4개의 성문을 설치하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현재의 성터 길이는 3,300m이며 조선초기 김계희 목사가 부임하던 때인 1457~1459년 사이 에 축성한 것이다.
※ 나주읍성 사대문 명칭 : 동)동점문, 서)서성문, 남)남고문, 북)북망문 나주읍성은 사적 제337호로 지정되어 있다.